생령좌 (生靈座) 1

 

     우리나라에서 제법 규모가 큰 사찰은 대개 세개의 문을 지나야 절마당에 들어서도록 꾸며져 있다.  절 초입에 일주문(一柱門)이 있고, 중간쯤에 사천왕문(四天王門), 그리고 예배장소에 들어가기 직전에 불이문(不二門)이 있다.

     일주문과 불이문은 상징적인 의미로 간단한 장식의 문을 세워 두고 있으나 사천왕문은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네개의 큰 조각상을 비치해 놓고 있 다. 이들은 지국천, 증장천, 광목천, 다문천으로 네 방위를 맡아 지키고 있다. 불교 경전에 따르면 이들은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왕천의 주인으로 중생들의 착한 마음을 보호하고, 악한 마음을 가진 무리들을 힘으로 굴복시켜 교화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이같은 임무를 상징하기 위해 사천왕의 발밑에는 귀신의 모습을 한 생령좌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가상생물인 생령좌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악을 형상화 한 것이다.

     하나의 석굴사원 형식으로 꾸며진 석굴암에도 미끈하게 잘 생긴 네구의 사천왕이 본존불을 예배하러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이들도 어김없이 생령좌를 짓밟고 있다. 또 경주 사천왕사터에서 출토된 유약을 바른 화려한 벽돌사진 왼쪽에도 사천왕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생령좌의 등을 걸터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들 생령좌의 표정이 재미있다. 석굴암의 생령좌 가운데 어느 것은 너무도 괴로워서 혓바닥을 손에 뽑아 쥐고 있는가 하면, 어느 것은 사천왕의 발을 떠밀고 있기도 하다. 한 손을 땅에 짚고 사천왕의 짓누르는 힘을 버텨 보려 안간힘을 쏟는 생령좌도 있다.  사천왕사터 벽돌의 생령좌는 엉거주춤무릎을 꿇고 아랫입술을 불쑥 내 밀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악한 마음을 미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특히 종교에서는 이를 더욱 극단적인 모습으로 보여준다. 서구의 악마들은 머리에 뿔이 달리고 사악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어 첫눈에도 섬뜩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령좌들은 무섭다기보단 불쌍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악한 마음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아 안쓰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 단계 뛰어 넘는 종교적 의식과 미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의식을 조금 더 깊숙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유물이 괴물의 모습을 새긴 백제의 벽돌이다. 연꽃 위에 떡 버티고 서 있는 괴물은 얼굴의 터럭이 사방으로 뻗고, 손톱과 발톱을 갈퀴처럼 내세워 무척이나 무서운 모습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노여움 속에는 익살스러운 웃음이 감춰져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삼국유사의 여러 이야기에는 도깨비들이 자주 등장한다. 두두리(豆豆里)라 불리는 이들 도깨비들은 신라인들과 함께 돌다리를 놓는가 하면 절을 짓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못을 메우기도 한다.

     괴물이나 악마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패악조차 웃음거리로 받아 들인 민족, 도깨비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살아가던 민족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아름답고 여유롭게 살았던 이들에게서 이웃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그러나 지금의 우리 주위엔 누가 있는가.

이상 출처 : http://kr.blog.yahoo.com/andylew59/4504

 

 

생령좌 (生靈座) 2

 

     사천왕은 불교세계의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호국호법의 천신으로 동방의 지국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북방의 다문천왕을 말한다.

     사천왕상의 대좌는 생령좌, 연화좌, 운좌, 암좌, 천의좌 등이 있다. 생령좌는 천인, 인간, 아귀, 축생 등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을 대좌로 사용한 형식이며, 조선후기 사천왕 조각상의 대좌는 오직 생령좌로만 나타난다.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생령좌는 16세기 중반(1515)부터 18세기 전반(1725)까지 14개 사찰 총 94개 작품이 남아있다.

     전라도를 비롯하여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등 전국 각지에 현존하며, 제작방법은 목조와 소조이다. 조선후기의 생령좌는 한 쌍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대형의 사천왕상을 제작하면서 안정성과 파손 방지를 위해 좌상으로 제작하였고, 생령좌를 다리에 인접하여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형 생령좌가 사천왕의 발아래에 나타난다.

     인간형은 관모나 상투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양반이거나 여인 및 서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야차형은 머리에 뿔이 솟아 있거나 이빨이 튀어나온 험악한 형상이다. 16세기와 17세기의 생령좌는 대부분이 야차형이고, 18세기에 는 인간형의 모습이 많이 조성된다. 18세기에 인간형 생령좌가 증가하는 이유는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양반이나 탐관오리에 대한 비판과 경계의 의미로 사천왕의 발에 밟힌 인간형 생령좌가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생령좌는 무릎을 꿇은 자세와 밟혀 있는 모습으로 표현 된다. 16세기와 17세기 중반 이전의 생령좌는 왼쪽 다리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생령좌와 오른쪽 다리 아래에 밟혀 있는 생령좌가 조성된다. 17세기 후반에는 그 반대의 형태인 오른쪽 다리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생령좌와 왼쪽 다리 아래에 밟혀 있는 생령좌가 등장한다.

     18세기에는 상기한 두 자세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사천왕상의 생령좌에도 봉함목과 지물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봉함목이 있는 생령좌가 사천왕상의 다리를 받들고 있는 모습에서 하위 신으로서의 생령좌가 사천왕을 받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생령좌는 사천왕을 떠받들고 있는 하위 신으로 천인에서 축생까지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표현한 것이다. 하위 신으로써 사천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던 생령좌는 조선후기에 그 의미가 확대된다. 즉, 악한 인간을 응징하고 복속시키는 의미가 추가되어 새로운 도상인 인간형 생령좌가 등장하는 것이다. 무릎을 꿇고 다리를 받치는 생령좌는 사천왕상을 받들고 도와주는 역할을 표현한 것이고, 밟혀 있는 생령좌는 사천왕에게 굴복하여 복종하는 모습이다. 사천왕은 바로 이런 악함과 욕심을 표현한 생령좌를 조복시키는 모습을 통해 천왕문을 지나는 신도나 대중이 자신의 사악함을 뉘우치고 경계하며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 출처 : https://www.nl.go.kr/nl/search/bookdetail/online.jsp?contents_id=CNTS-00068071950#none

 국립중앙도서관  ,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생령좌 연구  ,  표제/저자사항 :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생령좌 연구 / 장일순  ,  발행사항 : 경남 : 불교미술사학회, 2013